한강 노벨문학상 수상을 바라보는 마음



 1990년대 어느 날, 나는 문예지 창작과 비평의 소설들을 훑어보던 중 한 편의 단편소설에 깊이 빠져들었다. 그 소설이 어떤 제목이었는지, 어떤 내용을 담고 있었는지는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. 하지만 그 순간 느꼈던 감동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 뚜렷이 남아 있다. 그때 처음으로 만난 작가, 한강. 그러나 그 당시 나는 한강이라는 이름을 깊이 인식하지 못했고, 신진 작가로서의 그의 역량을 그저 스쳐 지나갔다.

 

 세월이 지나고, 다시 한강이라는 이름이 나에게 크게 다가온 것은 그의 작품 <검은사슴>을 통해서였다. 탄광촌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인물들의 미세한 감정선과 배경 묘사의 정교함이 돋보였다. 나는 두꺼운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손에서 놓지 못하고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. 그때 나는 이 작가가 단순한 신진 소설가가 아님을 깨달았다. 그의 작품이 나에게 거울처럼 비추었고, 나는 마치 나의 일부를 들여다보는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.

 

 <검은사슴>을 읽고 난 후, 나는 한강을 나만의 보물처럼 마음속에 간직했다. 왠지 모르게 누구에게도 이 작가를 알리고 싶지 않았다. 이 뛰어난 작가를 나만 알고 있는 듯한, 나만의 소중한 발견으로 남겨두고 싶었다. 그러나 동시에, 이렇게 뛰어난 보석 같은 작가를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도 함께 있었다. 마치 두 가지 상반된 감정이 나를 짓눌렀다. 한강을 나만의 것으로 남기고 싶은 욕심과, 그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아쉬움 사이에서 말이다.

 

 그러나 이 양가감정을 깨뜨린 작품이 바로 채식주의자였다. 이 작품은 한강을 세상에 제대로 알리기 시작했다. <채식주의자>로 한강은 맨부커상을 수상하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고, 이후 여러 국제 문학상을 휩쓸었다. 내가 간직하고 싶었던 보물이 이제는 세계가 인정하는 보석이 된 것이다. 그가 드디어 한국 문학계뿐만 아니라 세계 문학계에서도 그 가치를 인정받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왠지 모를 상실감을 느꼈다. 보물을 빼앗긴 기분이랄까. 하지만 동시에 기쁨과 자부심이 함께 밀려왔다. 한강이라는 작가가 그만한 인정을 받을 만하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.

 

 그리고 마침내, 한강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. 이는 한국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이었고, 아시아에서도 무려 12년 만에 거둔 성과였다. 이 소식은 나에게 월드컵 우승보다 더 큰 기쁨을 안겨주었다. 한강이라는 작가가 나의 마음속에 보물로 자리 잡은 그 순간부터, 그가 세계의 보물이 되기까지의 여정은 나에게도 하나의 큰 감동이었다. 아마도 하늘에서 소설가 박경리도 미소를 지으며 기뻐했을 것이다.

 

 한강의 문학은 이제 나만의 것이 아니게 되었지만, 그가 주는 감동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서 빛나고 있다. 한강은 나에게 언제나 거울 같은 존재였고, 나는 앞으로도 그 거울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, 나 자신을 돌아볼 것이다.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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